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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시

마지막 이사/노재순

by 시간의 마시멜로 2023. 5. 5.



마지막 이사

노재순


휴일도 없이 전화가 울린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동굴 속에서
시든 향기 지우는 유품정리사
감정을 읽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반쯤 남은 소주병과
탈출을 포기한 이력서 뭉치와
식 후 30분 복용을 지키지 못한 약봉지들의
눅눅한 절망도 털어낸다
몇가닥 말라붙은 컵라면 면발처럼
방안은 체념으로 익숙한데
달력은 삼복 더위에도 목련이 벙글고 있다
금방이라도 달려가려는 듯
문 앞에는 신발 한 켤레 단정하다
어디로 걸어가고 싶었을까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한 장의 가족사진
규칙을 어기고
아득할 때도 있지만 거기까지다
한 점 의혹도 없이

오늘도 섬 하나 먼 바다로 떠나보냈다


시집 < 꽃으로 묶어둔 시간> 현대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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