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이사
노재순
휴일도 없이 전화가 울린다
그는 깊은 잠에 빠져있는 동굴 속에서
시든 향기 지우는 유품정리사
감정을 읽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반쯤 남은 소주병과
탈출을 포기한 이력서 뭉치와
식 후 30분 복용을 지키지 못한 약봉지들의
눅눅한 절망도 털어낸다
몇가닥 말라붙은 컵라면 면발처럼
방안은 체념으로 익숙한데
달력은 삼복 더위에도 목련이 벙글고 있다
금방이라도 달려가려는 듯
문 앞에는 신발 한 켤레 단정하다
어디로 걸어가고 싶었을까
마지막까지 놓지 못했던 한 장의 가족사진
규칙을 어기고
아득할 때도 있지만 거기까지다
한 점 의혹도 없이
오늘도 섬 하나 먼 바다로 떠나보냈다
시집 < 꽃으로 묶어둔 시간> 현대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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