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
김종휘
길이 사라졌다
길이 사라지자 목화솜같이 피어 오르던 꿈도
뽕나무의 오디처럼 달콤하던 시간도 어딘가로 사라졌다
길이 사라진 곳에 새날은 오지 않았다
우리들이 오가던 길에는 가시덩굴만 무성하다
네가 내게 오지 않아도 길은 그 자릴 지키고 있을 줄 알았다
길이 어떻게 사라지냐고 허공을 향해 소리쳤지만
객지에서의 길은 길이 아니었다
너와 내가 오갔던 길이 어느 날
다신 건널 수 없는 강이 되고 바다가 되었다
먹고살기 위해 만났던 사람들이 친구가 아닌 것처럼
먹고살기 위해 오갔던 길은 길이 아니었다
김종휘 시집 <낯익어서,낯선> 천년의 시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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