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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고 싶은 시

옮긴이/최란주

by 시간의 마시멜로 2024. 4. 23.


옮긴 이

최란주

한 뭉치 양털에서 실이
실패에 감기는 것을 본다
작년의 나뭇가지에서
올해로 꽃송이를 옮기는 여름
내 이름을, 내 별명과 말투를
이곳까지 옮겨온 이는 누구인가
나무와 나무는 새들을 옮기고
긴 둑은 강물을 옮기고
시클라멘이 작은 창을 옮기고
아이는 엄마를 옮기고 산이 우공을 옮기고
어린 왕자의 장미가
별들을 옮긴다

아무도 모르게, 당연하게
곳곳을 옮기는 존재들
조로서도를 넘어
산의 이쪽과 산의 저쪽을 옮기듯
낙타의 주인으로 한 생을 살듯
옮기는 이들이 있다

그림자가 옮겨온 몸에서 해가 지고
비등점을 넘은 글자들이
포플러나무 위를 뛰어다닌다
넝쿨을 해석해
번역체로 옮겨온 책을 읽는다
세상을 옮기고 옮기는 이들이
맨 앞장이나 뒷장에
꼭 있다


최란주 유고시집
<그대는 바람이기 때문입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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