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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묶어둔 시간/노재순 시집

시간의 마시멜로 2023. 3. 24. 17:26



지금이 절정이다


개나리가 꽃잎을 터트렸다
마침표를 찍지 못한 봄이 동구릉을
서성이는 11월

아니 꽃이 미쳤나 입동이 지났는데
철딱서니 없기는
누군가 툭 던지고 지나간다

노랑이라고 다 같은 노랑이 아니다
숨비소리처럼 터지는 꽃
봄날에 피었던 그 꽃이 아니다

병아리들 봄나들이 마치고
다시 또 한번 가보지 못한 낯선 길에서
봄을 노래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비록 철을 놓치고 길을 잃었지만
서두르지 않고 자신의 향기를 찾아가는
그래 지금이 절정이다

가을을 서성이는 나도 그렇다


■ 시인의 말

내 손을 잡아주던 그분의 시 한 줄이
꽃소식을 들고 왔다.
봄을 쏘아 올린 목련꽃봉오리들
그 목덜미가 시리다.

아흔의 엄마는 언제 시인이 되느냐고 묻는다.
그 앞에서 나는 여전히
물가를 서성이는 어린 아이다.

            2023년 봄


            
가슴이 아려오는 시들이 있다. 눈물의 서사를 펼쳐내서가 아니라 눈물을 애써 감추고 있어서 가슴을 오히려 더 아리게 만드는 시들. 노재순의 시들이 그렇다. 그의 시들은 물처럼 부드럽고 봄나물처럼 파릇파릇하고 나무들의 뿌리처럼 깊지만 다 읽고 나면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는 “시인의 말”에서 “아흔의 엄마는 언제 시인이 되느냐고 묻는다. 그 앞에서 나는 여전히 물가를 서성이는 어린아이다”고 말한다. 그는 늘 자신을 낮추고 산다. 그는 그저 자신의 작품을 “오롯이 집중하며 마음을 담아도 위를 꿰매면 아래가 터지고 아래를 꿰매면 위가 울게 된다”고 말할 뿐이다. 자신의 작품은 “천의무봉”이 아니라 그저 “생의 시린 옷 한 벌”일 뿐이라 하고, 그저 자신은 “천진한 눈망울로 세상”을 읽고 싶은 평범한 시인일 뿐이라고 말한다.
나는 내 마음을 움직이는 시가 좋은 시라 생각한다. 이 시집을 읽는 내내 내 가슴은 축축하게 젖어들었고, 너무도 다채로워서 한순간에 읽어야 했으며, 사유 또한 깊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일독을 권한다.
─ 오봉옥(시인 ·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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