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나이
허물어진 돌담을 서성거리는 저녁을 보았지
어둑한 굴뚝을 빠져나와 그을음이 묻은
손으로 문지르면
까맣게 번지는 저녁의 나이
이끼 낀 돌담 사이
썩은 밑동을 보려고
먼 길을 달려온 저녁의 뒤꿈치가 나무뿌리보다 질겼네
길목을 지나며
나무에게 들려준 산 너머 마을은 허공으로 흩어지고
매미를 섞어 그늘을 잇던 나무는
둥근 의자가 되어버렸네
한철 그늘을 빌려 쓴 노인들이
나무 아래서 시드는 것처럼
나무도 그늘을 짜다가 늙어갈 줄만 알았는데,
사라진 느티나무 얼굴은
느티나무보다 오래 살아남은 저녁만 알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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