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인뉴스 이경애 기자
기사입력 2021-10-26
죽어서 왕이 된 사람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비밀의 빗장을 풀고 후원으로 들어섰다
규장각 뒤에 공부방을 짓고
서재의 책을 가져다 밤새워 읽었던
낭랑한 목소리 들어 본다
그가 걸었던 숲길도 걸어보고
그가 앉았던 정자에서 연꽃 바라보며
시인이어서 더 절절했을
짧지만 뜨거웠던 생을 따라가 본다
문예군주를 꿈꾸었던 그는
할아버지 정조를 너무나 닮고 싶었던
조선의 마지막 등불 이었다
용상에 오르지 못했지만
왕이 되고 황제가 되어 종묘에 들었다
400여 편의 시를 남긴 시인으로
다시 만난 효명세자
시 한 줄에
한 사람의 생이 살아 있다
회화 나무
선인문의 아픈 역사 홀로 삭혀 낸
창경궁 회화나무* 한 그루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지지대에 기대어
아슴아슴 명줄 이어가고 있다
여드레 밤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별들의 피 맺힌 절규가
한 번씩 찌르르 삭신을 훑고 간다
또랑또랑 글 읽는 소리와
옥천교 뛰어다니며 앵두를 따 먹던
해맑은 웃음소리 들릴 때면
그 아이가 펼쳐갈 세상을 그려보며
봉황의 날개를 꿈꾸기도 했는데
차마 꺼낼 수도 없이 삼켜버린 그날의 기억들
하늘 한번 바라보지 못한 채
석고대죄의 심정으로 무릎을 꿇고
제 가슴을 헐어내 동굴을 파 놓았다
죽어도 내려놓지 못한 아들은
수미산을 돌고 돌면서도 이름을 떨쳤으니
염주알 같은 열매만 굴리던
회한의 무게 내려놓고
어느 왕조의 한 생이 꿈결처럼 저물고 있다
* 사도세자의 비명을 듣고 너무 가슴이 아파 줄기가 비틀리고 속이 비었을 것이라고 함
▲노재순 시인
강원도 영월 출생
2017년 치악산 생명문학상 수상
2018년 김유정 기억하기 전국 문예작품 공모전 수상
2021년 50+시니어 신춘문예 공모전 수상
《 문학의 오늘 》엔솔로지로 작품활동 시작
시집 『시간의 마시멜로 』 시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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