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고 싶은 시

초가/이육사

시간의 마시멜로 2020. 1. 18. 09:48

초가

 

 

구겨진 하늘은 묵은 얘기책을 편 듯

돌담울이 고성(古城)같이 둘러싼 산기슭

박쥐 나래 밑에 황혼이 묻혀오면

초가 집집마다 호롱불이 켜지고

고향을 그린 묵화(墨畵) 한 폭 좀이 쳐.

 

띄엄띄엄 보이는 그림 조각은

앞밭에 보리밭에 말매나물 캐러 간

가시내는 가시내와 종달새 소리에 반해

빈 바구니 차고 오긴 너무도 부끄러워

술래짠 두 뺨 위에 모매꽃이 피었고.

 

그네 줄에 비가 오면 풍년이 든다더니

앞내강에 씨레나무 밀려나리면

젊은이는 젊은이와 뗏목을 타고

돈 벌러 항구로 흘러간 몇 달에

서릿발 잎져도 못오면 바람이 분다.

 

피로 가꾼 이삭에 참새로 날아가고

곰처럼 어린 놈이 북극을 꿈꾸는데

늙은이는 늙은이와 싸우는 입김도

 

벽에 서려 성애 끼는 한겨울 밤은

동리(洞里)의 밀고자(密告者)인 강물조차 얼어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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